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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앤 테크놀로지] 종이로 만든 옷: 60년대 하이테크 패션

뮤지엄 오브 아트 앤 디자인의 특별전시장에 기획전으로 마련된 것은 ‘종이 세대: 60년대 패션 현상(Generation Paper: A Fashion Phenom of the 1960s)’이라는 신기한 패션 전시이다. 2023년 상반기에 아트와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전시가 많이 선보였지만 이처럼 특이한 기획은 없었다. 원래 애리조나의 피닉스 미술관에서 기획한 종이로 만든 드레스 전시는 1960년대 제지산업의 새로운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지금도 화장지 만드는 제조업체로 유명한 스콧 제지회사는 1966년 직조방식이 아닌 방수가 되는 페이퍼 소재의 섬유를 선보였다. 우주시대를 맞이한 신소재 개발을 홍보하기 위해 대중들을 위해서 에이 라인 스타일의 반소매 드레스, 비키니 수영복, 앞치마, 모자 등 홍보제품을 만들어서 배포하였다.     이들 소재는 지금 페덱스(Fedex) 등의 우편물 봉투 혹은 병원의 일회용 가운 등에서 보는 섬유와 비슷하다. 생분해성 의료용 가운(biodegradable medical gown)은 대부분 직조되지 않은 나무 펄프로 만들어진 옷이다. 한편 듀폰 화학회사의 터벡(Tyvek)이라고 불리는 펄프형 파이버는 사실상 플라스틱형 섬유로서 방수, 방염 등이 가능하여 봉투 등 수송 재료로 많이 활용된다.     이번 전시에 드레스들은 화려한 꽃무늬 혹은 기하학적 패턴이 강하게 들어간다. 이것은 1960년대 유행한 팝아트와 시각적 착시 효과에 주목한 옵아트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반전 운동의 시민적 저항 운동에서는 무기 대신에 꽃을 상징으로 도입하였다.     스콧 제지회사 및 여성 및 아동 생활 잡지는 이러한 홍보 물품의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 쿠폰을 모아서 보내면 ‘종이’ 드레스를 사은품으로 선보이는 등 신소재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이미지를 연속으로 인쇄한 드레스도 있다. 듀라 위브(DuraWeve)라는 상표명으로 출시된 스콧 제지회사의 신소재는 1958년 특허를 취득하고 1960년대 드레스로 만들어서 홍보하였는데 세븐틴매거진에 나온 스콧 회사 쿠폰 두 장과 1달러 25센트를 보내면 화려한 종이 드레스를 보내주었다.     청소년, 젊은 여성 등은 이러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8개월 동안 50만개의 드레스가 배송되었다. 스콧 제지회사가 홍보하는 일회용 냅킨처럼 입다가 버리는 패션은 간편해 보였지만 이것도 ‘종이’였기에 찢어지는 경우도 많았고 세탁은 불가능하였고 담뱃재라도 떨어지면 불붙기 쉬웠다. 노스캐롤라이나 애쉬빌에 위치한 마스 회사(Mars Manufacturing of Asheville)는 스콧 제지회사의 마케팅 캠페인에 힘입어 케이셀(Kaycel)이라고 하는 93% 셀룰로스와 7% 나일론으로 구성된 섬유로 만든 종이 드레스를 팔았다. 1969년 환경보호단체의 반대 등으로 종이 드레스는 유행에서 멀어지게 된다.     8월 27일까지 전시 중이라고 하니 시원한 여름 패션을 경험하는 기분으로 콜럼버스 서클에 있는 뮤지엄 오브 아트 앤 디자인을 방문해 보기 바란다. 전시에 합당한 교육적 설명문이 더 많았으면 아트와 테크놀로지의 접목을 이해하기가 더 쉬웠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하이테크 종이 스콧 제지회사 드레스 전시 패션 현상

2023-06-02

[아트 앤 테크놀로지] 머신러닝이 이해한 뉴욕현대미술관의 아카이브

뮤지엄 오브 모던아트 로비에 일 층부터 이층에 걸친 커다란 벽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이 특별전은 2022년 11월 19일 시작하여 올해 5월 말까지 계속된다. 로비에 들어서면 압도적인 스크린의 크기가 관객의 관심을 끈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보통 작품 옆에 붙어있는 벽면 텍스트는 저 멀리 54가 쪽 출입구 벽에 붙어있다. 건너편 보조화면에서 작품의 이름이 ‘Unsupervised(감독 되지 않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작정 앉아서 보고 있노라면 대강 세 개의 시퀀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도 같은 물결이 시시각각 다른 색깔로 펼쳐지는 것이 하나이고 그다음은 드로잉 같은 이미지들이 줄지어 나오다가 마지막으로 컴퓨터 조정화면처럼 인공지능의 현재 상황을 모니터할 수 있는 그래프와 표 등이 나온다.     사람들은 무작정 비디오 아트처럼 쳐다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공지능이 현대미술관의 아카이브 소장자료를 ‘학습’하여 깨우친 배움의 내용을 시각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무려 14만장에 달하는 자료를 학습하였다. 정확한 숫자는 138, 151이다.     한편 비슷한 이미지가 펼쳐지지만 오늘 보는 이미지는 어제 본 화면의 흐름과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데 이것은 전시 장소에 특정한 상황을 보여주는 설치작품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비슷한 전개과정의 화면이 색채와 조형적 요소에서 시시각각으로 매일매일 어제와 혹은 한 달 전과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인공지능에 빛의 밝기, 바람의 세기 등과 같은 날씨 조건, 관람객의 움직임, 주변의 생활 소음 등을 측정하는 센서를 연결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오늘의 삶의 흐름이 한 달 전의 일상적인 하루와 똑같지 않은 환경 조건에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인공지능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환경 조건과 외부 조건에 반응하여 ‘배움의 내용’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통 시퀀스와 시간 한계가 정해진 채로 무한 반복되는 비디오 아트와 다른 점이다.     ‘Unsupervised’는 터키 출신의 현대미술작가 레픽아나돌(Refik Anadol)의 창작이다.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경험하는 맥락이 소비자 민원을 해결하는 응답 소프트웨어 등에 국한되어 지극히 기계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의 흐름을 적용하였다. 많은 조건과 가상 시나리오 등에 국한된 활동 혹은 사고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머신러닝 응용 프로그램과 달리 이번 설치 작업에서는 최소한의 매개변수를 적용하여 인공지능이 ‘감독 되지 않은’ 환경에서보다 적응력을 가지고 학습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꿈을 꾸는 인간의 두뇌처럼 ‘상상’ 같은 작용을 하도록 최대한 간섭을 아니 감독을 배제한 것이다. 따라서 부제는 기계의 환각(Machine Hallucination)이다.     StyleGAN2 라고 부르는 프로세스 소프트웨어는 NVIDIA 회사의 연구자들이 만든 것이다. 이 프로세스에 적응형 판별자 증강 adaptive discriminator augmentation(ADA)이라는 훈련용 기법을 적용하여 적은 데이터로 학습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아나돌 작가의 스튜디오가 맞춤형으로 따로 제작한 Latent Space Browser를 사용하였다. 이 때문에 학습된 GAN의 잠재공간(Latent Space)에서 생산된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화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GAN은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라고 풀어쓰는데 한국어로는 ‘생성적 적대 신경망’이라고 번역한다. 비지도 학습에 사용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서 2014년 이언굿펠로우(Ian Goodfellow)라는 컴퓨터공학자가 몬트리올 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에 발표한 것이다.     원래 머신러닝에서 입력데이터(input data)와 출력데이터(output data)를 연결하는 사고의 구조인 잠재공간(Latent Space)의 작용이 3차원 구체의 모양으로 보조화면에 나타난다. 대형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이렇게 사고과정을 거쳐서 학습한 내용이 시각화하여 표현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레픽아나돌의 작품이 현대미술관 로비에 전시되었다는 것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시각적 표현물이 현대미술의 범주에 속한다는 개념적 태도의 전환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전에 해외뉴스토픽 등에 나오는 ‘신기하지만 이상한’ 인공지능 미술작품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관람객들이 십 분이 넘도록 화면의 진행을 지켜보도록 시각적 매력을 선사한다는 것도 나름 긍정적이다. 배경음악은 아나돌과 협업하는 작곡자의 사운드 작품이다. 또한 2층에 큐알 코드를 입력하면 아나돌 작품의 NFT를 블록체인 화폐 지갑에 다운로드 할 수 있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뉴욕현대미술관 머신러닝 아카이브 소장자료 머신러닝 응용 건너편 보조화면

2023-01-27

[아트 앤 테크놀로지] 뉴욕과학관에서 만난 알루미늄 추상화: 작가 윤경렬

뉴욕 홀오브사이언스(New York Hall of Science)는 퀸즈 코로나 공원 안에 있는 과학관이다. 1964년 뉴욕 세계박람회 당시 문을 열었다. 10월 15일부터 한국 출신의 추상화가 윤경렬 작가의 전시가 ‘큐빅 인셉션 시리즈 2’라는 이름으로 열리고 있다. ‘태초 적인 큐브’라고 해석해 본다. 손가락 마디처럼 작은 알루미늄 큐브는 마치 페인트 방울방울처럼, 혹은 물감에 적신 붓의 한 획처럼뻗어 나간다. 오드리 리즈(Audrey Leeds) 큐레이터는 추상화를 주로 그린 윤경렬 작가의 조각적인 진화라고 표현한다. 금속 재질이 두드러진 알루미늄 호일 혹은 알루미늄 컨테이너를 재활용하여 만든 메탈릭한 추상 작품이 주를 이룬다. 반짝이는 유성 같기도 하고 불이 켜진 도시의 밤 풍경 같기도 하다. 흰색 혹은 은색 줄무늬가 두드러진 배경에 자그마한 알루미늄 상자들은 공상과학 픽션에 나오는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페인의 벨라스아르테스 미술아카데미에서 수련을 거친 윤경렬 작가는 아크릴판이라든가알루미늄 호일 혹은 금박 같은 색다른 재료를 이용하여 대규모 추상화의 전통을 재현하고 있다. 이것은 1921년생인 알렉스 카츠 작가가 1912년생인 추상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과 1923년생인 팝아트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 사이에서 자신만의 사실주의적 초상화라는 유니크한 장르를 만든 것과 유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윤경렬 작가는 앵포르멜 적인 한국형 단색화적 추상화 대신에 지중해적 색감이 풍기는 원색적인 페인트로 그린 추상화를 그려왔다. 또한 금속성의 반짝임이 드러나는 특이한 재료를 이용하여 미래지향적으로 거창한 ‘도시적, 산업적인 풍경화’를 창조해냈다. 스페인에서 보낸 시간은 윤경렬 작가의 감수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윤경렬 작가의 풍경화스러운 추상회화는 게르하르트 릭터의 1968년 흑백 페인팅, ‘마드리드 도시풍경 Stadtbild Madrid’을 연상시킨다. 서울이나 뉴욕처럼 마천루가 즐비한 도시와 달리 마드리드 같은 유럽의 고도는 일정한 높이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훨씬 인간적이다. 하지만 19세기 말의 도시계획 덕분에 사이사이 길게 뻗은 자동차형 대로도 눈에 띈다.     ‘큐빅 인셉션’ 작품의 특이점은 테크놀로지와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알루미늄 호일이 음식 포장에 처음 사용된 것은 1913년 라이프 세이버(Life Savers)라는 원색적인 반지 모양 캔디 포장이었다. 은박으로 싸고 그 위에 브랜드 특유의 색동종이 포장을 둘렀다. 원래 19세기 초반부터 통조림 깡통으로 흔히 사용되는 주석(tin) 또한 호일처럼 얇게 가공하여 음식물 포장에 사용되었다. 영국의 해군은 1820년대부터 주석으로 만든 통조림 음식을 제공받았고 1901년 미국에서는 American Can Company가 설립되어 각종 음식 제조업체에 깡통을 납품하였다.     하지만 주석으로 만든 통조림 음식에서는 간혹 통조림 음식 특유의 맛이 났고 또한 북미대륙에서 주석보다는 알루미늄이 훨씬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어서 이차 세계대전 이후로 알루미늄이 음식물 포장 및 보관에 큰 인기를 끌었다. 1888년 즈음 피츠버그에 알루미늄 정련 공장이 마련되었고 1907년 Aluminum Company of America라는 이름으로 규모를 확장하였다. Alcoa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 회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알루미늄 제조회사이다. 가볍고 녹슬지 않는 알루미늄은 철강보다 활용도가 높아져서 항공우주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재가 되었다. 지금도 판매되는 레이놀즈 랩(Reynolds Wrap)은 리차드 레이놀즈가 1919년 세운 U.S. Foil Company의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 되었다. 당시는 공장에서 제조되는 담배 혹은 음식물 포장 재료로 주로 납품하였고 지금처럼 베이킹이나 음식물의 보관, 보온 등에 사용하지는 않았다.     윤경렬 작가의 2022년 새로운 작품들은 알루미늄 호일과 금박을 함께 쓰고 있다. 부조와 조각, 회화의 장르적 구분을 파괴하고 새로운 조형언어를 만들어가는 현대미술작가의 노력 뒤에는 광산업, 테크놀로지, 금속 제련술의 발달 및 환경보존의 철학 같은 미술을 넘어서는 많은 문화사적, 인문학적 고민이 담겨있다. 코로나의 위협을 뒤로하고 2022년 동계올림픽, 3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이어 12월 사막의 나라 카타르에서 열리는 전무후무한 겨울의 월드컵 축구 경기를 겪으며 우리들의 다면적인 삶을 뒤로하고 알루미늄 호일로 만든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을 경험해보는 것도 한 해를 마무리하거나 시작하기에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뉴욕과학관 알루미늄 알루미늄 호일 알루미늄 큐브 알루미늄 컨테이너

2022-12-11

[아트 앤 테크놀로지] 뉴욕의 현대미술관: 볼프강 틸만스의 아날로그 사진과 비디오게임기

2022년 9월 초에 1년도 넘게 비어있던 뉴욕 뮤지엄 오브 모던 아트의 6층 특별전 전시장이 볼프강 틸만스 전시로 다시 문을 열었다. 전시 준비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는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가 본인의 이전 갤러리 전시처럼 직접 테이프, 핀 등으로 출력한 사진을 벽에 바로 붙이는 방식을 고집해서였다. 박제된 동물처럼 액자에 들어간 그런 사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컬러 프린터기로 인쇄한 각종 크기의 사진들이 누군가의 벽에 붙여진 기념 포스터 혹은 엽서처럼 붙어있다. 마치 1980년대 청소년의 방에 걸린 각종 포스터와 기념사진, 잡지에서 오려낸 화보 등을 보는 느낌이다.     독일 출신의 볼프강 틸만스는 흔히 X세대 사진작가로 불리는데 이는 작가가 1968년생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런던, 뉴욕 등지에서 패션 포토그래퍼 등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틸만스가 자주 사진의 소재로 삼은 주제들이 회고전답게 총망라되어 있다. 독일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1983년 잠시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영국의 유스 문화를 경험하였다. 이는 틸만스가 1990년부터 영국 남부에서 미술대학을 다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1994년에는 뉴욕에서 잠시 살면서 요한 클라인(Jochen Klein)이라는 독일 출신 미술작가를 만나서 인생의 반려자로 1997년 클라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살았다. 2007년부터는 런던과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사람이 아니지만 2000년 영국의 터너상을 받았다. 터너상은 50세 미만의 현대미술작가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기회이다.     이번 회고전에는 다른 전시가 그러하였듯이 틸만스의 친구, 연인, 동료 작가, 대중문화의 유명인사 등이 등장한다. 캐주얼하면서도우연히 찍은 듯한 구도의 사진은 사실상 틸만스가 일생 고민해온 ‘사’라는 매체에 대한 질문을 잘 보여준다. 틸만스는 2000년대까지 필름을 넣어 찍는 전통적인 사진기를 고수해왔다. 전시장 곳곳에 나타나는 스냅사진같이 작은 사이즈의 작품은 90년대 후반까지 아날로그형 필름 사진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2009년 무렵 디지털 사진기로 옮겨간 이후 2012년부터는 필름에 의존하는 사진 방식을 버리고 디지털 사진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같은 시기 현대미술관 일 층에서는‘혼자가 아니야: 비디오 게임과 다른 상호작용 디자인’(Never Alone: Video Games and Other Interactive Design)이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틸만스의사진 전시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80년대 등장한 테트리스 혹은 팩맨 등의 비디오 게임은 틸만스와 그의 사진 작업의 주제가 된 친구 및 지인들이 어린 시절 즐겨 놀던 전자 게임들이다. 알렉세이 파지트노브 라는 과학자는 당시 소비에트 과학 아카데미 소속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1985년 제작된 이 게임은 기하학적 그리드 패턴 안에서 블록을 쌓아간다. 단순한 원리이지만 중독성이 강하여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붙잡고 앉아있게 되었다. 1989년 닌텐도의 ‘게임보이’라는 게임기를 구매하면 테트리스 게임이 따라왔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테트리스 게임을 집에서 즐기고자 게임보이 기기를 구매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팩맨 게임은 테트리스보다 더 오래된 게임으로 1980년 창안되었다. 일본의 게임회사 남코(Namco) 직원이었던 토루이와타니는 1980년 팩맨 게임을 만들었다. 총을 쏘거나 칼을 휘둘러 적을 죽이는 주제로 한 틴에이저 소년들을 위한 게임 대신에 남녀 모두 연령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귀여운 동그라미 팩맨을 만들었다. 노랑 동그라미 얼굴에 삼각형 입을 가진 팩맨은 무지개 색깔의 ‘고스트’라고 부르는 다른 적을 먹어치우고 나아간다. 보너스 포인트를 주는 다른 물체를 먹으면서 힘을 키우기도 하는데 이와타니는 이렇게 먹어서 힘이 나는 생각은 미국의 만화 ‘뽀빠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팩맨의 귀여운 디자인은 적을 죽이거나 무찌르는 기존의 비디오 게임과는 완전히 다른 장르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하지만 이와타니는 게임의 성공으로 인한 보상은 거의 누려보지 못했다. 회사 직원으로 만들어낸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코 회사는 2006년 폐사하고 아스트로 보이, 울트라맨 혹은 자동차 모형 등을 만들던 반다이 회사와 합병하게 된다. 미국의 토이 트럭 장난감 회사 톤카(Tonka)의 일본 파트너로서 많은 자동차 모형을 만든 것이 반다이였다. 이와타니는 게임 회사를 떠나서 토쿄시립대학에서 비디오 게임 디자인을 가르쳤다.     전시에는 마인크래프트 등의 인기 게임과 함께 ‘혼자가 아니야’라는 2014년 개발된 퍼즐형 모험게임도 나온다. 인디언 부족인 이뉴피아크 그룹의 전래동화를 발판으로 삼아서 ‘누나’라는 이름의 소녀와 북극여우가 함께 모험을 헤쳐나가는 게임이다. 알래스카 지역의 인디언 공동체와 게임회사 이라인 미디어(E-Line Media)가 함께 개발한 의미 있는 사업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틸만스의 30년 사진 작업과 소비자형 게임 디자인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된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비디오게임기 현대미술관 비디오 게임 사진작가 볼프강 아날로그형 필름

2022-10-28

[아트 앤 테크놀로지] 뉴욕의 현대미술 시즌: 종이가 사라진 갤러리

8월은 휴가 기간을 갤러리 및 미술관들이 다음 전시를 준비하며 호흡을 고르는 기간이다. 뉴욕의 사교계 행사들이 늘 그렇듯이 노동절을 지나고 뉴욕패션위크 및 아모리쇼 등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퀸즈 플러싱 아더 애셔 테니스장에서 열리는 US오픈 테니스 경기의 결승전 등도 이 기간과 맞물리도록 기획되어 있다. 2020년부터의 팬데믹은 많은 전문가가 예측한 대로 2년이 흐른 2022년 하반기가 되니 헤드라인 뉴스에서 사라지고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2022년 가을의 많은 행사는 온라인과 실제 행사가 병행되기도 하고 소규모이지만 직접 만나게 되었다.     2022년 9월 초에 열린 프리즈 서울의 인기가 드높았고 따라서 많은 미술계 인사들은 처음 서울에서 열리는 미술 행사에 참여하고자 서울을 방문하였다. 따라서 뉴욕시에서 열린 아모리쇼에서는 일부 홍콩, 일본 등지의 갤러리가 참석하였지만 대부분 미국의 여타 지역 및 남미, 유럽 등지의 갤러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마치 백화점에서 여러 브랜드 상품이 진열되어 있듯이 갤러리들은 아모리쇼에 선보이고 싶은 작가들과 피카소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가지고 왔다. 수백 달러짜리 작품부터 수천 달러, 수십만 달러 작품이 공존하는 것이 아트페어이다. 같은 시기 뉴욕시 이스트리버의 피어36에서 열린 페이퍼 온 아트(Paper on Art) 페어는 주로 수백 달러, 수천 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구성된 페이퍼 중심의 현대미술, 현대 사진, 판화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 9월 중순부터는 연이어 경매회사 중심으로 아시아 위크가 시작된다.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의 경매회사는 9월 14일부터 9월 29일까지 전통 및 근현대 아시아 미술품을 전시하고 경매하게 된다.   한국 작가들의 약진은 아트페어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작가는아니지만, 해외 갤러리에 소속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여기저기 보였다. 많은 한국 갤러리들은 프리즈 서울 혹은 키아프 서울에 참석하고 뉴욕의 아모리쇼에 오지 않았지만 부산의 조현화랑은 큰 부스를 마련하여 한국 추상화 작품을 전시하였다. 르만 모핀 갤러리는 소속 작가 서도호의 개인전을 9월 내내 보여주고 있고 맨해튼 콜럼버스 서클 근처의 존제이 칼리지 쉬바 갤러리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작된 항쟁의 모습을 답은 광주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9~10월 두 달간 전시한다.     테크놀로지의 약진은 아모리쇼에 전시된 각종 비디오 아트와 인터랙티브 스크린 미술 등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많은 사진 작품들은 초현실주의를 되돌리는 듯한 상상의 모습을 재현한 사진들이 있었다. 비디오아트는 클라우드 드라이브를 통한 파일 다운로드, 메모리 카드에 담은 동영상 파일 등의 형태로 ‘소유’하게 되는데 5000~6000달러 정도의 가격대로 구매 가능한 비디오 작품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체험하게 되는 것은 종이에 인쇄된 작가 정보 및 가격 리스트, 갤러리 소개서 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QR코드는 어느 곳에서나 접속 가능하여 갤러리 혹은 작가의 웹사이트를 전시장에서 휴대기기로 검색하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작품 제목 등도 벽면 안내 스티커 없이 작품만 걸려있는 경우도 많았다. 팬데믹으로 시작된 온라인 전시는 또 다른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어 아모리쇼에 직접 오지 않고도 작품 거래는 활발하였다고 한다. 다가오는 아시아 위크 경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한다.     이처럼 테크놀로지의 약진으로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접하게 된 환경에서 갤러리나 아트페어를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은 숫자가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실제’가 무엇인지 한 번도 경험하지 않고 디지털화된 재생된 경험을 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그러기에 아모리쇼와 아트온페이퍼 등에는 자수, 직조, 세라믹 등의 손으로 천천히 만드는 작품들의 우세함도 눈에 띄었다. 이런 의미에서 아시아 위크에 경매장의 전시장을 찾아가 보기를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경매 보조원에게 청동, 도자기, 옥, 석조물 등을 안팎으로 보여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작품은 디지털 이미지 파일이 아니고 누군가의 손을 거친 조형물임을 느껴보아야 한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현대미술 갤러리 한국 갤러리들 해외 갤러리 현대미술 현대

2022-09-16

[아트 앤 테크놀로지] 현대미술에서 옷이란 무엇인가?

뮤지엄 오브 아트 앤 디자인은 뉴욕시 맨해튼의 콜럼버스 서클에 있는 디자인 전문 미술관이다. 뮤지엄 오브 모던 아트와 멀지 않은데 53가에서59가까지 조금만 걸어가면 있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미술관은 아니다. 주얼리 디자인, 가구 전시 등 많은 전시를 보았는데 비교적 인기가 많은 것은 역시나 패션 디자이너 중심의 전시였다. 아나 수이(Anna Sui) 전시를 2020년 2월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문을 닫기 전에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년이 흘러서 ‘가먼팅: 현대미술로서의 코스튬(Garmenting: Costume as Contemporary Art)’이라는 대규모 기획전시가 2022년 3월 문을 열었다.     현대미술은 시각적인 매체를 넘어서서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과 의학적 영역, 환경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의상 혹은 의복은 인간의 신체에 맞닿은 직접적인 장식미술로서 고대 미술 혹은 고고학적 발굴에서 쉽게 접하는 것이다. 근대 산업혁명 등으로 의복 제작이 공장화, 기계화되면서 ‘디자인’이라는 개념과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스타일’ 혹은 ‘패션’이라는 개념이 대두하면서 미술작가, 건축가, 산업 디자이너 못지않게 패션 디자이너의 지위도 재정립되었다. 21세기 소셜미디어 등의 시청각 매체가 여론 및 언론의 흐름을 지배하게 되면서 패션 정보 내지는 의복에 관한 자기표현은 더더욱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 때문에 패션이 본인의 정체성 혹은 브랜드 가치를 나타내는 중요한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가먼팅’ 전시는 35명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100점에 가까운 비디오, 조각, 행위예술, 설치미술 등의 장르를 보여준다. 패션 혹은 의복이 사회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창조되고 소비되고 감상 되는지 그런 과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날마다 옷을 입고 집을 나서는 과정들이 습관적으로 무의미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관람자들이 깨닫도록 한다. 1960년대 행위예술과 혼합매체 설치 작업이 대두하면서 의상 혹은 코스튬은 현대미술 창작 과정에서 필수적인 항목이 되었다. 전시를 기획한 알렉산드라 슈봐르츠(Alexandra Schwartz) 큐레이터는 의상이 나타내는 인종, 사회적 계급, 성 정체성, 민족성, 주관성 등을 주요 주제로 삼아서 전시의 내러티브를 구성하였다고 설명한다.     한국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 아영 유(A Young Yu)는 한국의 무속신앙을 행위예술로 표현하는데 여기서 살풀이 의상과 춤사위가 핵심이다. 전시 기간 유 작가가 안무를 담당한 공연이 무용수 소혜 김(Sohye Kim)과 필 정(PilJeong)의 춤사위를 표현된다. 여기서 무당의 의상이 비단과 자수 조각, 세라믹 장식물 등으로 화려하게 제작되었다. 창조적인 의상은 행위예술의 필수요소인 것이다.     한편 작가들은 시각 미술로서의 의상과 일상복으로서 기능을 담당하는 의상 사이의 차이, 존재가치, 미의식 등을 탐구하기도 한다. 같은 시기에 열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2부로 구성된 특별전, ‘미국에서: 패션의 편집본(In America: An Anthology of Fashion)’과‘미국에서: 패션의 낱말사전(In America: A Lexicon of Fashion)’은 현대미술작품으로 제작되지는 않고 누군가 입어서 ‘기능’을 담당하였던 의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은 역사적 유물, 미술작품 등으로 간주할 만한 특별한 존재가치를 지닌 ‘작품’들이다. 한편 ‘가먼팅’ 전시에서 나오는 옷들은 현대미술작품으로 기획된 것이지 일상복으로 착용하도록 의도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일반인들이 무심코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며 입는 옷 혹은 옷을 고르는 행위 자체를 심각하게 고민해보도록 촉구한다.     안드레아 지텔(Andrea Zittel)의 개념미술 프로젝트 A-Z Administrative Services는 가상의 회사이다. 여기서는 아방가르드 디자인 개념에 맞추어 대형 가구, 가정용 기구부터 소형 문구류 등까지 만든다. 또한 이 회사의 직원들이 입어야 하는 작업복(smock)도 마련되었다. 지텔이 디자인한 작업복은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도형으로 구성된 회화작품을 마치 의상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여기에는 효율성, 합리성, 유닛이라고 부르는 기본단위를 바탕으로 한 작업체계, 디자인 구성 등을 암시하는 듯한 직선 위주의 디자인이 돋보인다. 여기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이런 작업복, 기성복을 제작하는 공장 또한 근대 산업화에 부응하여 탄생한 것이다. 공장의 기계들은 유닛에 따라서 줄지어 늘어서서 부서별로 맡은 바 업무를 완성한다. 여기 전시된 지텔의 옷은 규격화된 인체를 상징하듯 같은 사이즈로 제작되어 있지만 전시장의 다른 작품들은 성별, 인체 타입 등에 따라서 의상 표현의 다양화를 강조하였다. 패션산업은 현재 개개인의 신체 치수와 체형의 다양함을 반영하는 ‘맞춤형 의상’을 제작하도록 클라우드 데이터 저장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원하는 디자인을 골라서 선택하면 키와 팔다리 길이, 체형에 맞도록 실시간으로 제작되어 소비자에게 배송된다. 한편 또 다른 극단적인 예는 유전자 조작이나 다른 방법을 통하여 인간의 체형을 규격화하면 의상의 치수가 똑같아진다. 지텔의 작업복 디자인은 이러한 ‘규격화된 사회구성원’을 암시하는 듯하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현대미술 현대미술 창작 현대미술 작가들 패션 디자이너

2022-07-29

[아트 앤 테크놀로지] 현대미술에서 후각적 경험이란?

현대미술은 미술이 시각 매체라는 존재감을 확장하고 있다. 요즘 현대미술이 어떤 경험으로 다가오는지 물어본다면 많은 이들이 필름처럼 시각 매체와 사운드가 결합한 종합예술로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행위 혹은 동시간적 설치 중심의 작업에 초점을 맞추어 공연예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편 현대미술을 둘러싼 이론적 담론에서 ‘시각’의 압도적인 우월함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부각되어 왔다. 19세기 중반까지 음악과 미술은 청각과 시각의 두 부분을 사이좋게 나누어 각각의 분야를 발전시켜 왔다고 생각했다. 19세기 중엽에서 후반에 걸쳐서 사진과 축음기, 활동사진 및 무성영화, 그리고 20세기 들어서 영화 혹은 움직이는 이미지가 등장하면서 전근대적인 매체의 구분이 점점 허물어져 갔다. 또한 인공물과 자연물로 구분하여 갤러리 혹은 미술관은 인공으로 제작된 미술 작품을 보여주고 자연사 박물관이나 동식물원은 동식물을 전시하는 자연물의 영역으로 구분한 것도 20세기 후반 의미 없는 구분이 되었다.     최근 20년 동안 크게 두드러진 변화는 후각으로 경험하는 미술 작품을 선보이고 경험하게 된 것이다. 전근대적 창작 활동에서 미술 작품의 제작에서 후각적인 경험은 보편적이고 접근이 쉬웠다. 유화의 경우 덜 마른 유화에서는 특유의 물감 냄새가 난다. 연필 드로잉을 해보면 지우개와 연필의 냄새가 떠나지 않는다. 조각이나 왁스를 이용한 작품 제작에서는 더더욱 제작 공간에 스며든 냄새가 떠나지 않는다. 먹을 갈아서 종이에 형체나 문자를 표현할 때 먹의 냄새는 오래 지속한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의 감상에서 시각의 우월함이 압도적으로 강조되어 미술 비평에서 냄새나 촉감 같은 감각적 묘사는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 뉴욕시에는 맨해튼의 로어이스트사이드와 차이나타운 사이의 현대미술 갤러리들이 밀집한 곳에 생겨난 Olfactory Art Keller라는 갤러리가 후각을 위주로 한 작품을 전시하는 후각 전문 갤러리이다. 2021년 2월 개장하여 냄새, 향기 등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을 대중에게 소개한다. 갤러리 주인 Andreas Keller는 후각의 철학적인 의미를 연구하는 학자이다.     한국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 아니카 이(Anicka Yi)는 십년 정도 냄새를 미학적 경험의 일부로 삼은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였다. 2021년 가을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터빈홀(Turbine Hall)에서 냄새를 이용한 설치미술을 제작하였다. 터빈홀은 원래 전력 발전소의 터빈이 있던 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기원을 잘 보여주고 또한 설치미술을 위해 특별히 남겨진 공간이다.     2015년 뉴욕의 첼시에 위치한 키친 갤러리(The Kitchen Gallery)에서 100명의 여성의 몸에서 추출한 분자를 배양하여 향기를 전파하는 디퓨저를 만들어 공간을 채웠다. ‘You Can Call Me F’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시각이 남성 중심적 세계관을 반영한다면 후각은 여성 중심적 영역을 반영한다는 현대비평이론을 설치미술이라는 방법으로 구체화하였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2016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Life is Cheap’이라는 전시에서는 개미와 아시아계 미국 여성의 냄새를 채취하여 입구에 들어서는 관람객들이 맡도록 설치하였다. 테이트 모던에서 선보인 설치미술 작품은 냄새를 경험하도록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원초적인 생명체 혹은 외계에서 온 ‘물체’ 사이의 모호한 형태를 가진 조형물은 생물학과 철학, 생명공학과 인류학, 혹은 생화학과 윤리학 등의 학문적 경계성을 넘은 새로운 차원의 현대미술 창작의 방향을 엿보게 한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현대미술 후각 설치미술 작품 현대미술 갤러리들 현대미술 작가

2022-07-01

[아트 앤 테크놀로지] 2022년 뉴욕의 아트 페어 시즌

뉴욕의 5월은 5월 초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20~21세기 특별 경매를 시작으로 주요한 미술계 행사가 열리는 시기이다. 크리스티는 초현실주의 특별 코너를 비롯해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이라는마사치오의 두 인물을 묘사한 작품이 뉴욕의 현대미술 경매 기간에 전시되었다가 경매는 파리에서 성사되어 미화 2100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경매예정가인 3000만 유로 혹은 미화 3200만 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기록적인 가격에 거래되었다. 2004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두치오의성모자상 템페라 회화를 미화 4500만 달러에 산 적이 있다. 채색이 없는 작은 목탄드로잉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기에 완성된 회화 작품이 아니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에 거래된 것이다. 소더비는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로 대규모 미술 수집품을 경매에 넘긴 매클로우(Macklowe) 가족의 작품을 거래하여 기록적인 판매를 하였다. 맨해튼의 유명 마천루 건물을 비롯해 부동산 개발업으로 부를 이룬 린다와 해리 매클로우 부부는 80세가 훌쩍 넘어 황혼이혼을 하게 되었고 50년 동안 공들여 모은 20세기 현대미술 작품들이 정든 집을 떠나서 세계 각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마크 로스코를 비롯해 각종 유명작가의 작품 거래 총액은 미화 9조2200만 달러였다.     원래 테파프(TEFAF: The European Fine Art Fair)라고 불리는 아트페어는 미켈란젤로라든가 렘브란트 같은 고전적인 작품을 거래하는 유럽 미술의 주요 거래 무대였다. 1970년대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골동품이나 17세기 회화 및 프린트 중심의 갤러리들이 모여서 페어를 기획했다. 네덜란드가 유화 제작의 주요한 거점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의미가 있다. 따라서 참여 갤러리의 반 정도는 앤틱 오브제나 가구, 그리고 유럽의 전통 회화 작품을 파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거래할 수 있는 작품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금융거래의 중심지가 미국으로 옮겨온 이후 뉴욕의 파크애버뉴 아모리에서 열리게 되었다. 테파프는 원래 유럽 갤러리 중심의 미술 행사였다. 베이비부머 등이 세상을 떠나고 중년을 맞이한 제네레이션 엑스 세대의 미술 컬렉터 취향도 바뀌면서 2017년부터 열린 테파프 뉴욕 같은 행사는 현대미술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팬데믹이 저물어간다고 생각하는 2022년 5월 테파프 뉴욕은 가고시언 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등 앤틱을 다루지 않는 현대미술 갤러리 중심이었다. 이들 미국에 거점을 둔 갤러리들은 전통적으로 마스트리히트에 가지도 않았다. 한국의 가나아트, 타니 김 갤러리, 현대 갤러리도 국제화하려는 테파프 조직위원회의 비전에 맞추어 참여하였다. 특히 현대 갤러리는 곽덕준 등의 비디오 작가를 선보였다. 현대 사진 작품으로는 만 레이 등 20세기 초반 작가들이 그나마 좀 보였을 뿐 역시 미술 경매 시장은 아직도 유화 및 아크릴 회화 중심으로 활발한 유통이 일어나고 있다.     5월 말에 열린 영국의 아트 페어 프리즈는 작년부터 행사 장소를 바꿨다. 맨해튼의 이스트 리버에 있는 랜덜스 섬의 큰 공간 대신에 첼시 근처 허드슨 야드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셰드(The Shed)에서 60개 정도의 갤러리로 구성하였다. 17개 국가의 갤러리들이 모여서 현대미술의 축제를 재현하고자 하였다. 팬데믹 이후로 100개 이상의 갤러리들이 모이는 행사는 드물어졌다. 사진과 관련하여 프리즈 뉴욕이 중요한 것은 올해 후원하는 비영리 단체들이 사진의 발전, 테크놀로지와 현대미술의 결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A.I.R., Artists Space, Electronic Arts Intermix and Printed Matter 네 단체 모두 70년대 시작되었다. 이 모든 행사를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전시는 현대 뮤지엄 오브 모던 아트에서 10월까지 진행 중인 헨렌콘블룸의 여성 작가들의 사진 작품 전시이다. 콘블룸은 심리상담가였다. 여성 사진작가 혹은 여성 작가들이 창작한 사진 작품은 사진 역사의 초기부터 시작되었지만 주요미술기관과 역사적 서술은 20세기 대부분 소수의 남성미술 작가, 그것도 서유럽과 북미의 작가들에게 집중했을 뿐이다. 21세기 중엽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여자 작가와 서구 이외 지역에서 활동한 사진작가들의 자료 수집에 뜨거운 열기와 관심이 필요하다.     간혹 사진작가 정도는 있었지만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하는 설치 미술, 비디오 아트 등은 드물거나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아트 페어에서 테크놀로지는 비영리 재단의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마이너리그’인 것이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뉴욕 아트 현대미술 작품들 현대미술 경매 유럽 갤러리

2022-05-27

[아트 앤 테크놀로지] 휘트니 비엔날레: 설치미술과 테크놀로지

휘트니 비엔날레는 2021년 개최되어야 하는데 팬데믹 때문에 연기되어 2022년 4월 초 열렸다. 휘트니 미술관의 두 큐레이터 데이비드 브레슬린(David Breslin)과 애드리안 에드워즈(Adrienne Edwards)가 주축이 되어 ‘아메리칸 아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전시기획에 담아보았다. 현대미술계에서 흑인 미술 작가 및 퍼포먼스 아트 등에 관한 전시를 한 에드워즈는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 센터에서 2018년 휘트니 미술관으로 옮겨왔다.   이 두 큐레이터는 뉴욕을 벗어나서 활동한 경력을 잘 살려 멕시코와 텍사스 국경 혹은 플로리다와 캐리비언의 여러 섬나라 출신의 작가 및 작품 주제를 골랐다. ‘국경’ 혹은 ‘경계’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또한 상징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고민해 보았다. 63명의 작가 중에 20명 가까이의 작가들이 미국 영토 이외의 북미 지역, 캐리비언, 남미 등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또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리적 상황 또한 뉴멕시코, 텍사스, 플로리다, 애리조나 등 국경 지역이 눈에 띈다.     휘트니 비엔날레는 2014년 브로이어 빌딩에서 마지막 전시를 하고 2017년, 2019년, 2022년 (21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연기) 현재의 허드슨 강가에 마련된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빌딩에서 열렸다. 2017년에는 다나 슈츠(Dana Schutz)라는유대인 출신 여성 작가의 회화 작품 ‘에멧틸의 죽음’으로 흑백인종 갈등의 입장 차이를 보이며 미술계의 큰 논란을 가져왔다. 2019년 전시는 75명 중에 소수인종 배경의 작가들을 대거 영입하여 2017년의 논란을 잠재우려 하였다. 2022년 전시의 주제 ‘Quiet as it’s kept’라는 구절은 흑인 소설가 토니 모리슨에서 따왔다. 이것은 소리 내 말할 수 없는 트로마, 수치, 인종적 차별 등 어두운 현실의 여러 문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전시장의 6층은 검은색 벽으로 5층은 흰색 벽으로 구성하여 흑백갈등을 은유적으로 나타냈다.     가상현실과 비디오 게임, 합성 이미지 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한 테크놀로지의 변용이 눈에 띈다. 알프레도 하르는 2020년 6월 1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모습을 비디오 설치작품으로 보여준다. 흑백으로 찍은 시위대의 평화로운 행진 모습 이후에 저녁 7시 통행금지 시간 한 시간 전부터 시작되는 최루탄과 고무 탄환, 헬리콥터 등을 동원한 폭력적인 시위진압을 경험하게 한다. 비디오 상영공간의 천장에 설치된 대형 선풍기는 헬리콥터가 시위대의 머리 위로 근접하여 내려올수록 강한 바람을 만들어낸다. 굉음과 몸을 휘청거리게 하는 바람은 비디오에 나오는 얼어붙은 시위대의 공포감, 무력감, 분노 등을 관객들이 감정 이입하여 느끼도록 한다. 천정에서 나오는 대형 선풍기의 ’바람‘은 상상한 것보다 위협적이다. 머리 위 몇 미터 거리에서 근접 강하하는 헬리콥터의 바람이 얼마나 공포스러울 수 있는지는 상상해 볼 수 있다.     한편 이토바라다와 테레사 학경 차의 비디오 작품은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을 담은 16mm 필름으로 촬영된 영상이다. 모로코 출신의 여성작가 바라다는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와 애리조나의 피닉스 등지에 있는 ’기상 가속도(weather acceleration)‘ 테스트 센터의 작업환경을 촬영하였다. 태양에 노출되어 페인트, 의류, 제조상품 포장 등이 변색하는 과정과 시간을 가속하여 테스트하도록 강렬한 태양 아래 설치된 노천 실험실에서 노동자들은 표본을 넣고 빼고 관찰한다.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의 많은 설치 작품들은 이처럼 환경과 인간의 삶이 공존하면서 서로를 변화시키고 파괴하고 혹은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전통적인 ’풍경화‘의 개념에서 많이 벗어나지만 한편으로는 미술관에서 관람하는 19세기적인 풍경화 전통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환상적이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소수의 작고한 작가 중의 한 명이 테레사 학경 차(1951~1982)이다. 한국 출신의 차 작가는 죽기 직전 출판한 ’딕테 Dictee‘라는 작품이 영문학 및 비교문학에서 중요한 텍스트로 자리 잡아서 미술 작가뿐만 아니라 사상가 내지는 작가로 많은 연구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 70년대 버클리 소재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다니면서 인권 운동, 여성의 권리 주장, 및 소수자의 처우 문제 등에 관한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5층의 창가에 마련된 작은 텐트 안에서 비디오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 노트, 한국 방문 중에 찍은 사진 등 소규모 아카이브를 찾아볼 수 있다. 31세의 젊은 작가가 갑작스러운 범죄의 희생자로 세상을 떠났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팬데믹 동안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토니 모리슨이 언급하는 인종적 차별에 의한 트라우마가 아직도 지속함을 뼛속까지 느끼게 한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테크놀로지 비엔날레 휘트니 비엔날레 휘트니 미술관 소수인종 배경

2022-04-22

[아트 앤 테크놀로지] 20세기 초반의 여성 사진작가들: 뉴테크놀로지의 선구자들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상업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 즈음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미술 작가들인 클로드 모네(1840~1926)라든가 앙리 마티스(1869~1954) 같은 이들은 파리의 오페라 근처 나다르(본명 Gaspard-Felix Tournachon 1820~1910)의 초상 사진 스튜디오를 드나들곤 했다.   미국에서도 1850년대 상업사진관이 등장하면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1804~1865) 같은 유명인의 초상 사진이 제작되어 대중에게 퍼져나갔다. 한국의 경우도 1905년 대한제국 시절 고종황제의 초상 사진을 김규진 작가(1868~1933)가 찍은 것이 뉴왁 박물관에 남아 있다.〔〈【 1880년대 중반 한국을 방문한 미국 외교단 대표 퍼시벌 로웰(1855~1916)이 찍은 많은 거리풍경 등의 사진이 그의 책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1885)에 등장한다. 】〉〕     카메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였고 그것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활용할지 19세기 중엽부터 많은 논의가 있었다. 모더니티의 시작과 더불어 등장한 사진 기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빠르게 전파되었고 새로운 기술이기에 백인 남성을 위주로 한 기득권 세력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따라서 영국의 애너앗킨스 (Anna Atkins 1799~1871) 혹은 쥴리아마가렛 카메룬(Julia Margaret Cameroon 1815~1879) 등의 선구적인 여류 사진작가들은 1850년대부터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독보적인 사진 작품을 선보였고 사진사의 서술에서 중요하게 등장한다.     현재 뉴욕에서는 A Female Gaze: Seven Decades of Women Street Photographers(여성의 시선: 여류 거리 사진작가의 70년 여정)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1월 19일부터 4월 2일까지 거의 3개월 동안 여성 사진작가의 눈으로 본 거리 풍경 사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는 57가 풀러 빌딩에 입주해 있는 사진 전문 갤러리이다. 3월은 여성의 역사적 중요성을 기념하는 문화행사가 많이 열리는 달이다.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는 1981년 설립되어서 2003년부터 풀러 빌딩에서 근현대 사진 작품의 아트 마켓을 개척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활약한 12명의 여류 사진작가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총 전시된 작품 수는 49점이다. 베레니스 애벗(Berenice Abbott 1898~1991),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 1923~1971), 조디 비버(Jodi Bieber 1966~), 에스더 버블리(Esther Bubley 1921~1998), 레베카 렙코프(RebeccaLepkoff 1916~2014), 헬렌 르빗(Helen Levitt 1913~2009),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1926~2009), 매리 엘런 마크(Mary Ellen Mark 1940~2015), 프란시스 맥로글린-질(Frances McLaughlin-Gill 1919~2014), 리젯 모델(Lisette Model 1901~1983), 바바라 모건(Barbara Morgan 1900~1992), 루스오킨(Ruth Orkin 1921~1985) 등이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루스오킨의 ‘이탈리아의 미국 여성(American Girl in Italy)’이다. 1951년 이탈리아로 간 오킨은 우연히 알게 된 니나 리 크레이그(Nina Lee Craig)라는 미술 학도의 사진을 찍었다. 미술책을 품에 안고 걸어가는 니나의 활기찬 모습은 그녀를 쳐다보는 행인들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1950년 ‘거리에서의 포옹’ 또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거리 연인의 모습니다. 바쁘게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배경으로 극장 입구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연인의 모습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1900년 즈음 태어난 베레니스 애벗과 리젯 모델, 바바라 모건 등은 여성 사진 작가의 토대를 마련한 역사적 인물들이다. 바바라모건은도로시아랑에, 안젤아담스, 보몽뉴홀 등과 함께 유명한 사진 잡지 ‘애퍼쳐(Aperture, 조리개)’를 1952년 창간하였고 마사 그레이함과 머스 커닝햄 등의 모던 댄서의 사진을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위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찍은 풍경 사진은 색다른 구도와 시각으로 현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도비포토샵 같은 디지털 사진 편집 소프트웨어가 없던 시절에 필름을 조작하여 연결된 이미지 등을 만드는 기술의 개발은 사진작가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모건은 테크놀로지를 포용하여 예술 사진을 만드는 선구적인 인물이었다.     오하이오에서 태어난 베레니스 애벗은 파리에 있는 만 레이의 스튜디오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사진을 접하게 되었고 1929년 뉴욕에 정착한 이후로 많은 거리풍경 사진을 찍었다. 가장 젊은 조디 비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활동하는 여성사진작가이다. 1994년 민주화 선거를 취재하였고 남아공 도시의 슬럼에 사는 이들의 인생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작품의 가격은 다이안 아버스나베레니스 애벗의 4만 달러에 가까운 작품부터 5000달러 정도의 작품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 1만 달러 정도의 가격대가 제일 많다.     현재 가상현실 및 대체 불가한 토큰 등으로 미술계의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19세기 중엽 사진이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이 여성 및 소수 인종, 비유럽권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던 것처럼 테크놀로지의 등장을 선구적으로 활용해보는 열린 태도가 기대되는 시기이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뉴테크놀로지 사진작가 여류 사진작가들 동안 여성 여류 거리

2022-03-30

[아트 앤 테크놀로지] 화려한 전시 테크놀로지 - 미술관 직원들 사라지는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과 한국미술경영학회에서 공동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최근 논의한 내용은 ‘세계미술경영의 과제: 도전과 변화’였다. 필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형 미술관의 경영 방침에 대한 발표에서 경영 인력의 구성에서 형평성, 포괄성, 다양성 등을 추구하는 현황을 보고하였다. 여기서는 인종, 성별, 젠더 다양성 등의 요소에서 지도부로 올라갈수록, 연구직에서도 관리직으로 갈수록 백인과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현실을 지적하였다.     2015년 앤드류멜론재단(Andrew W. Mellon Foundation)은 미술관관장협회(Association of Art Museum Directors, AAMD)와 미국박물관협회(American Alliance of Museums, AAM) 공동으로 640개가 넘는 박물관, 미술관 등의 문화 단체를 상대로 다양성이 얼마나 구현되었는지 알아보는 대규모 설문조사를 기획했다. 미술관관장협회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문화 기관장인 240명 정도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관 관장들이 얼마나 연봉을 받는지는 사는 도시의 생활 수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2019년 미술관 연봉의 투명성(Art/Museum Salary Transparency 2019)’이라는 이름의 이 문서(웹사이트)에 유명 미술관 관장의 연봉이 나와 있다. 메트로폴리탄의 경우는 박물관 건너편에 관장 가족이 살도록 관사를 마련해 주기에 부동산 가격을 합하면 총액 한국 돈으로 35억원이 넘는 보상을 받는다. 한편 평균적으로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의 대도시, 대형 미술관 관장들의 연봉은 한국 기준으로 연봉 7억원 정도의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한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연구 보조직’ 등의 직책으로 미화 2만 달러가 좀 넘는 연봉을 받고 있거나 정규직 학예연구사들이 미화 7만 달러 정도를 받는다.     2019년에 시작된 이러한 연봉의 투명성 운동은 21세기 들어서 더욱 고착화되어가는 자본의 집중화와 임금 격차는 미술관의 인력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단체 활동을 기획하도록 정치적 운동에 눈뜨게 하였다. 또한 대부분 석사 학위 이상 혹은 박사 학위 소유자인 연구 인력들은 본인들이 임금을 받는 ‘노동자’라는 점을 크게 자각하지 않고 지내왔다. 하지만 2010년 이후로 더더욱 벌어져가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와 무너진 부의 재분배를 직면하고 노동조합의 결성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0년 팬데믹 동안 관장과 부서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력이 무급휴가를 ‘선택’하도록 강요 아닌 강요를 받게 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더욱 부각했다.     한편 전시 기법의 디지털화는 더더욱 가속화되었고 팬데믹 동안 많은 관람객은 유튜브, 스트리밍 서비스, 인터액티브 웹디자인 등을 통해서 미술 전시를 감상하였다. 서서히 이전의 활동 수준으로 돌아가는 시만에 갤러리나 미술관은 직접 관람을 위한 예약제를 실시하면서 동시에 전시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해설과 함께 올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시작된 이상 다시 대면 관람만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6만~7만 달러 연봉을 받고 일의 양이 두 배가 되었다면 누가 얼마나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른 예술 분야처럼 최고의 0.5% 정도만이 최고의 보수를 받고 대부분은 ‘열정페이’라고 금전적 보상과 상관없이 그 일이 좋기에 영혼을 담아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도 미술관이다.     인공지능 혹은 테크놀로지가 발달하여 결국 미술관 큐레이터 내지는 전시 담당 인력을 대체하게 될까? 미술작품은 물질성이 중요한 부분이라서 관람객의 경험 차원에서 실물을 마주하는 경험을 제거할 수는 없다. 테크놀로지에 의존하는 전시 기법이 발달하여도 모든 것이 가상현실로 대체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북미 및 유럽의 미술관 경영을 보면 기업체 혹은 아주 부유한 기부자들은 테크놀로지 회사들의 대주주이기도 하기에 가상현실로 만든 그런 체험에 수백만 달러를 쓰면서 학예연구사 한 명 더 고용해서 일 년에 6만 달러 정도 연봉을 주는 것을 썩 내키지 않아 한다. 정년이 보장되는 그런 미술관 연구직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3~4개월 운영하는 디지털 전시 플랫폼을 만드는 데에 드는 300만 달러는 6만 달러 연봉을 50번 줄 수 있는 금액이다. 인플레이션 고려해도 그 금액이면 보존과학자 혹은 학예연구사를 충분히 한 명 30년 근속하도록 고용할 수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느 미술관의 미술작품을 익히고 활용방안을 개발하는 것이 6개월 프로젝트 기간 같이 일하는 외부 엔지니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테크놀로지 미술관 미술관 연봉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술관 관장들

2022-02-27

[아트 앤 테크놀로지] 디지털 이미지 파일의 변천: 30년의 발자취

한 해를 시작하면서 2021년 기고한 칼럼 중에 어떤 것이 제일 좋았는지 무엇을 더 읽고 싶은지 독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많은 이들이 11월에 출간된 비플의대체 불가한 토큰으로 판매되는 휴먼원 작품에 대한 칼럼을 제일 흥미롭다고 평하였다. 그중에 몇몇 독자는 사실 아직도 대체불가한 토큰이 무엇인지 이해가 잘 안 되고 판매가 성사되었을 때 집에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이 없다는 사실에 당혹감이 든다고 하였다. 어느 독자는 파일 양식인 JPEG 파일을 가져간다는 것 그 부분이 이해가 안 되어 칼럼을 읽고 또 읽었다고 하였다.     그런 분들께는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구매하여 사용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1999년 정도부터 디지털카메라를 접하였지만 연구용으로는 여전히 코닥 슬라이드 필름을 넣어서 사진을 찍었고 맨해튼 23가 즈음에 많이 있던 필름 현상소에 필름을 맡기고 완성된 35mm 슬라이드를 차곡차곡 바인더에 정리해두었다. 90년대 후반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는 둥그런 코닥 환등기의 트레이에 순서대로 슬라이드를 거꾸로 정리하여 넣었다. 간혹 좌우가 바뀌거나 상하가 뒤집어진 이미지가 스크린에 나오기도 했다. 그럼 빨리 환등기로 가서 잘못 넣은 슬라이드를 빼서 고쳐놓곤 하였다.     2003년 정도 박사학위를 마치고 강의를 본격적으로 하던 시기부터 슬라이드 환등기는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다. 각종 미술관에 소장된 미술 작품의 디지털 이미지 파일이 아트스토어(Artstor)라는 비영리 단체를 통해 분류, 정리된 것도 1990년대 후반이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1999년 정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더는 필름을 이용한 아카이브용 유물 사진을 찍지 않고 디지털 사진으로 옮겨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름으로 찍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이미지 자체가 디지털 파일 형태로 존재하고 저장되는 것은 1992년 Joint Photographic Expert Group (JPEG 파일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이라는 이름의 전문가들이 이미지 파일을 압축파일 형태로 만드는 기술의 원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의 원천 기술은 1972년 나시르아메드 라는 인도계 과학자가 만든 파일 압축기술에서 유래하였다. 지금 우리가 소셜미디어로 비디오, 사진, 음악 등을 공유하고 보내고 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핵심이 아메드의 기술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 말고 TIFF, PNG 등의 다른 이미지 저장 파일 양식도 80년대 개발되어 1993년 정도 상용화되었다.     이러한 디지털 이미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현대미술작가들은 어도비포토샵(Adobe Photoshop)과 같은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1988년 상용화된 이 기술은 토마스 놀과 존 놀(Thomas and John Knoll) 형제가 개발한 것이다. 어도비 시스템 회사에 유통을 맡겼고 1995년 기술에 관한 모든 권한을 어도비 회사에 넘겼다. 1982년 북부 캘리포니아 로스 알토스의어도비크릭(Adobe Creek)이라는 강가에 있는 자기 집 주소를 이용하여 회사 이름을 정한 존 와녹(John Warnock)은 동료 찰스 게쉬케(Charles Geschke)와 함께 1989년부터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에 적용되는 그래픽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를 대대적으로 전파한다. 독자 중에 90년대 내내 어도비 이미지 편집 기술을 배웠거나 사용한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영화, 광고, 애니메이션, 그래픽 디자인 등 90년대 이런 기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업계 전문가들이었다. 현대미술 작가 중에 테크놀로지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환영한 이들은 따로 배우러 다니거나 전문가를 고용하거나 했다.     30년이 흐른 2020년대 이런 기술은 사실상 소비자 테크놀로지에 긴밀하게 적용되어 굳이 전문 훈련을 받지 않아도 비디오 편집, 이미지 편집 등을 본인의 휴대폰으로 순식간에 완료한다. 여러분이 짐작하듯이 1995년 이후 출생한 이들에게 필름이 든 카메라와 다이얼을 돌리는 로터리 전화기 등은 영화나 사진에서 보는 역사적 유물이 되었다. 또한 90년대 이후 출생한 미술 작가들은 손으로 드로잉을 하는 것만큼 어도비포토샵이나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미지 스케치와 수정을 하는 것이 손쉽고 익숙하여 아예 디지털 파일 형태의 이미지만 있을 뿐이다. 프린터를 통해서 출력하면 종이나 캔버스, 아니면 직물 등의 매체에 인쇄되지만 ‘출력’을 하지 않으면 컴퓨터 하드웨어에 파일 이름으로 존재하는 무형의 창작물이다.     전통적인 미술 시장에서는 이렇게 종이나 사진 용지, 캔버스, 직물, 나무판 등에 출력된 ‘오브젝트’(사물)를 거래하였으나 이제 ‘대체 불가한 토큰’이라는 고유번호 같은 기술이 도입되면서 세상에 유일무이한, 단 하나뿐인 이미지 파일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30년 전에 디지털 사진기와 이미지 파일의 압축 기술이 나오면서 사물이 없는 파일 자체를 사고파는 미술 거래의 가능성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아직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같은 작가의 작품은 아이패드에 손가락으로 그린 드로잉을 프린트 같은 개념으로 아카이브용 종이에 출력하여 ‘그림’처럼 판다. 하지만 원래 이미지 파일로 존재하는 이 작품을 대체 불가한 토큰을 붙여서 세상에 단 하나의 고유한 파일을 소유할 수도 있다. 그럼 집안 곳곳 원하는 곳에 고화질 스크린을 설치하고 자신이 소유한 이미지 파일을 틀어놓을 수 있다. 아니면 태블릿 컴퓨터나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디지털 이미지 이미지 파일 디지털 이미지 디지털 파일

2022-01-28

[아트 앤 테크놀로지] 허드슨 야드의 셰드 전시장

허드슨야드는 재비츠센터 옆에 새로 생긴 대형 상업 및 주거 지역이다. 2020년 팬데믹이 올 예상을 못 하고 대규모 쇼핑센터와 기업의 사무실이 입주하였다. 2012년 착공을 시작하여 2024년 모든 구조물이 들어서도록 기획되었다. 블룸버그가 입주한 건물에 셰드(The Shed)라는 이름의 미디어 아트센터가 있다. 2019년 4월 문을 열고 디지털 아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도심 재개발 사업이 이루어질 때마다 대형 스크린이나 조명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 체험관이 생겨나고 있다. 런던의 바비칸센터라든지 뉴욕시의 링컨센터 같은 곳들이 복합문화센터로 탄생한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였다. 허드슨야드는 가장 최신 사업 지역이며 복잡하기로 손꼽히는 맨해튼에 생겨난 것으로 특이하다. 도시의 과밀화를 우려하여 반대가 많았지만 경제적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정치가들과 사업가들은 열심히 추진하였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시민들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 퍼블릭 공간도 빠짐없이 포함되었다.     베슬(Vessel)이라고 불리는 빗살무늬토기 모양의 대형 구조물은 팬데믹 동안 투신자살 등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많아서 당분간 폐쇄되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올라갈 수 없는 공공조각 같은 기념물로 남아있다.     셰드는 이에 비해 극장처럼 평범하다. 30스트리트의 전면이 유리로 된 로비로 들어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입구가 나온다. ‘드리프트: 부서질 듯한 미래 (Drift: Fragile Future)’라는 제목의 전시가 12월 중순까지 진행되었다. ‘들어 올리다’ 말뜻 그대로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5개가 가벼운 종이 상자처럼 공중에 떠서 움직인다. 아노니(ANOHNI)라는 작곡가의 음악을 배경으로 마치 현대 무용가의 추상적인 움직임처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회색 기둥이 춤을 춘다.   네덜란드 출신의 로네케 고딘과 랄프 나우타 두 작가가 64명의 미술작가, 기술자, 엔지니어 등을 모아서 만든 회사가 스튜디오 드리프트이다. 부서질 듯한 미래는 공연 중심의 기둥을 보기 전에 준비된 일련의 조그마한 전시장을 지나면서 느껴진다. 우리가 쓰는 많은 기계 부품이나 학용품 등이 손톱처럼 작은 큐브의 물질로 표현된다.     쓰레기가 쌓이듯이 수백만 개의 생필품들이 이러한 큐브의 형태로 전환되고 같은 물질들이 모인다면 곧 컨테이너 트럭만큼 거대한 기둥이 될 것이다. 그러한 육면체 기둥이 사람들이 없이 텅 빈 거리의 빌딩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비디오 작품에서 디스토피아의 엄습을 느낀다. 찬란한 가을 햇살 속에서 거리는 고요하고 아름답다. 이런 단상처럼 스쳐 가는 이미지를 경험하고 거대한 전시장에 서면 숭고함이랄까 경건함이 든다.   서커스나 마당극 공연장에서처럼 바닥 여기저기 관객들이 앉으면 공중에 매달린 콘크리트 기둥이 우리를 향해 내려온다. 원을 그리기도 하고 높이를 달리하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전체 공연은 45분에 달하는 상당히 긴 작품이었다.     25달러의 입장료를 낸 사람들에게 충분한 감상의 기간을 제공하는 셈이다. 캐나다 출신의 태양의 서커스를 보는 느낌이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의상과 무대 배경 속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이는 서커스 단원의 곡예 대신에 다소 단조로우면서 천천히 움직이는 우주선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회색의 밋밋한 기둥이 들어 올리고 내리고 하는 모습을 본다. 가끔 뿜어져 나오는 연기 효과와 조명이 그나마 댄스 클럽의 여흥을 떠올리게 하지만 기계음을 순화시켜 놓은 것 같은 배경 음악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디지털 아트의 한 축은 요즘 유행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대체 불가한 토큰(NFT)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은 스튜디오 드리프트처럼 미디어 아트와 기계공학을 바탕으로 한 체험 위주의 설치미술을 만드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현대 미술이 개념 미술을 중심으로 공간을 이용한 설치 미술의 가능성을 소개했다면 21세기 중엽은 설치 미술을 장르를 넘나들면서 오감을 이용하여 경험하도록 해준다. 테크놀로지가 미술의 창작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런 디지털 아트 전시장은 앞으로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미술 작품의 수집, 보관, 활용을 목적으로 생긴 기존의 미술관들도 앞다투어 이런 ‘체험관’을 설치하고자 노력한다. 사회 다른 분야에 적용된 테크놀로지가 그러했듯이 자본의 집중화는 가속화되어 이런 대형 설치 작품은 엄청난 자본과 협동이 있어야 실행 가능하다. 혼자 활동하고 생각하는 미술 작가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허드슨 전시장 미술작가 기술자 미디어 아트센터 콘크리트 기둥

2021-12-31

[아트 앤 테크놀로지] 비플의휴먼원: 340억원의 가치가 있는가?

지난 9일 개최된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의 현대미술 이브닝 경매에서 NFT 혹은 ‘대체 불가한 토큰’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기호와 함께 공중전화부스 같이 생긴 모니터가 들어간 사각형 기둥이 28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340억 원 정도에 낙찰되었다. 대형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사한 색감의 네 면으로 구성된 수직으로 기다란 직사각형 화면에는 시시각각 바뀌어 가는 사막, 바닷가, 들과 산의 풍경을 배경으로 은빛 우주복 같은 복장의 인간 형태가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대체불가 토큰과 함께 모니터가 포함된 케이스도 가져가는 셈이다. 13년 동안 거의 날마다 하나씩 제작하여 5000개의 디지털 이미지로 구성된 ‘매일: 처음 5000일(Everydays: First 5000 Days)’란 작품은 2021년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 달러, 그러니까 785억 원 정도에 낙찰되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금액을 주고 산대체 불가능한 토큰은 하이퍼링크와 함께 주어지는 이미지 파일 양식인 JPEG 파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체불가’라는 수식어가 말하듯이 세계에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며 복제나 대체가 불가능하여 위조나 변조를 방지한다는 것도 매력이다. 이것을 의 비네쉬 순다르산은 ‘메타코반’이라는 별명을 가진 비트코인 및 블록체인 투자자이다. 2013년 캐나다에서 대학 다니던 시절 시작한 비트코인 투자는 10년 안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11월에 거래된 ‘휴먼원’은 스위스 출신의 블록체인 투자가인 라이언 쭈러가 구매하였다. 크리스티 경매회사는 ‘디지털아트’라는 분야를 새로 만들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비플은 1981년에 태어난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사는 작가 마이클 윈켈만이다.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그래픽 디자인을 본업으로 하고 어린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디자인을 꿈꾸어왔다. 사실 테크놀로지의 특이함으로 보자면 NFT 기술과 JPEG 파일로 만들어진 디지털 이미지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도록 ‘창조’ 해내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미술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대중들의 관심을 끌만큼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비플의 작품을 소유하여 미술 컬렉터가 된 이들 블록체인 기술의 투자가들은 스스로가 메디치 가문이라든지 록펠러 집안이라든지 헤지펀드 매니저들처럼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서 이런 대체불가 토큰으로 구매한 작품이 가치를 더욱 높일지는 의문이다. 테크놀로지가 그러하듯이 전기가 없이는 접속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채 안 되 열린 지난 15일 뉴욕 소더비 경매장의 이브닝 세일에서는 매클로우라는 부동산 개발 회사를 소유한 컬렉터의 현대 미술 작품이 거래되었는데 마크 로스코의‘No. 7’ 추상화가 무려 8250만 달러, 1000억 원 정도에 낙찰되었다. 이것은 2012년 5월 거래된 로스코의 작품이 8680만 달러에 거래된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직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로스코의 작품이 대체 불가한 토큰으로 된 작품보다는 우위에 있다. 매클로우 컬렉션의 잭슨 폴록이 그린 추상화 ‘Number 17, 1951’ 작품은 6100만 달러에 팔렸다. 쟈코메티의‘LeNez’라는 피노키오의 뾰족한 코처럼 생긴 브론즈 조각은 7830만 달러에 거래되었으니 물체를 갖춘 미술 작품이 아직은‘휴먼원’이라는 이름의 대체불가 토큰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보아야 할까?     매체와 소셜미디어에서 뉴스거리를 생산해 내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놀라운 가치 생성이라고 본다. 철학적으로 ‘미술’ 혹은 ‘미적 향휴’라는 전통이 이런 금전적인 거래를 거쳐야만 하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개념도 사실상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대체불가 토큰이라는 하이퍼링크가 세계문화유산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한 억만장자들이 벌써 무수히 많아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라는 점에서 비플이 만든 휴먼원은 충분히 신기하다. 비플 작가는 대체불가 토큰을 산 사람은 편집 혹은 추가 영상 등을 거치면서 세월이 지날수록 새로운 화면을 소유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청동이나 대리석, 유화로 제작된 작품들은 그들의 ‘불변함’이 작품 향유의 중요한 요소였다. 박물관, 갤러리에서는 창작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고자 많은 인력과 연구 활동을 미술품 보존에 몰아주었다. 대체불가 토큰의 경우 위조나 변조, 파손의 위험이 없기에 2021년 제작 당시와 많이 달라진 표현을 2050년에 본다고 하여도 동일 작품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매일 달라져 가는 작품. 대지미술운동을 한 로버트 스미슨이 듣는다면 비플의 대체불가 토큰이 풍화작용을 겪어 변해가는 자연에 더 가깝다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중세 미술을 전공한 내 입장에서는 비플의 대체불가 토큰이 수많은 순례객이 다녀가던 스페인 제국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조각상처럼 본질적 가치와 기능을 상실하고 한때의 영광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기술적으로 미학적으로 크게 새로울 것도 경이로울 것도 없는 선전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를 잃으면 보이는 것도 없는 그냥 불 꺼진 상자이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억원 가치 대체불가 토큰 크리스티 경매회사 현대미술 이브닝

2021-11-28

[아트 앤 테크놀로지] 재스퍼 존스와 테크놀로지

1930년대 태어난 재스퍼 존스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동안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이하였다.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대규모 회고전은 사망 후 유작전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행운은 언제나 존스와 함께하였다. 전시장에 걸린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끄는 존스의 모습은 평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게르하르트 리터가 1932년생이므로 이 둘은 거의 백 세를 바라보는 최고령 미술 작가가 되었다. 존스와 리터는 페인팅이라는 아주 전통적인 기법으로 종횡무진 창작의 에너지를 발산하였다.     195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기나긴 창작의 여정을 살펴보면 재스퍼 존스의 작품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전혀 연관이 없이 나름대로 고고한 시간을 견뎌온 것처럼 보인다. 애플 컴퓨터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1955년생임을 생각해보면 당시 재스퍼 존스라는 젊은이는 재현이라는 창조 행위가, 그리고 회화 작업이 이토록 테크놀로지의 영향을 받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든이 넘어서 아이패드로 화려한 색감의 정물화와 풍경화를 손가락으로 그리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달리 재스퍼 존스의 회고전에는 디지털 시대 혹은 미디어 아트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의도적인 침묵이라고 보일 만큼 50년대 시작한 왁스를 녹여 칠하는 밀랍 기반의 엔코스틱(encaustic) 기법을 중심으로 패널에 붓질하면서 그리고 또 그렸다.     우리나라의 한국전쟁이 막 끝난 무렵 제작된 가장 대표작으로 꼽히는 플래그는 1954~1955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세  개의 나무 패널에 천을 씌우고 밀랍과 유화 물감을 섞어서 일부러 손으로 그린 티가 마구 묻어나는 엉성한 미국 국기라는 상징물을 그렸다. 당시 플래그 작품에 별은 48개였다. 하와이와 알래스카는 1959년에야 미국의 영토에 편입되어 연방정부의 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에 미국 국기는 어떤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타도의 대상이었다. 형태를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추상화가 유행하던 당시 미술계에서 아주 뻔한 시각상징물인 미국 국기와 미국 지도 등을 그리던 재스퍼 존스는 특이한 작가였다. 그의 친구 라우센버그의 영향으로 시각상징물과 일상생활의 오브젝트 등을 회화의 소재로 삼았지만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 멀티미디어 작품을 제작하거나 설치미술을 시도하지 않았다. 1928년생 앤디 워홀이 영화, 비디오, 실크스크린 등의 상업적 매체를 자유자재로 쓰고 대중매체에 자신을 자주 등장시킨 것에 비하면 재스퍼 존스는 은둔적이며 보수적이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미국 국기라든가 지도 같은 사실적인 상징물을 회화로 드로잉으로 또 프린트로 제작하고 또 제작하는 존스의 우직한 외길 인생은 놀랍게도 이미지가 넘쳐나는 디지털 공간에서 가장 많이 재현되고 전송되는 미술 작품이기도 하다.     영국의 거리 미술가 뱅시의 작품 또한 회화일 따름이지만 소셜미디어에서 엄청난 양으로 재생산되어 유명 작가가 되었다. 2021년 11월 9일 예정된 크리스티의 경매에서 뱅시의 ‘주유소의 해바라기꽃(Sunflowers from Petrol Station)’은 1200만 달러 정도로 경매 시작 추정가격이 책정되었다. 어느 주유소 가게에서 산 해바라기 꽃이 시든 모습으로 화병에 담긴 장면을 반고흐의 스타일로 그린 뱅시의 작품은 재스퍼 존스가 20세기 중엽에 시작한 사실적인 상징물이 회화로 재현되는 아이러니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재스퍼 존스 작품을 직접 본 적은 없다. 포스터를 보았거나 스크린에서 보았을 뿐인데 상징물이 갖는 명백한 기호적 가치 때문에 분명히 알고 있다고 눈으로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로고를 달고 그들의 디자인으로 각인된 소식, 뉴스, 보도자료가 디지털 공간에서 무수히 생산되고 재생산되고 퍼져나가는 것과 재스퍼 존스의 시각상징기호의 회화적 재현품이 스크린으로 감상 되는 것이 별개의 현상은 아닌 것이다. 뱅시의 작품을 실제로 본 사람들보다는 보도자료에서 ‘소식’으로 들은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스퍼 존스의 유명세 또한 인터넷의 전파와 더불어 무한확장 중이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테크놀로지 재스퍼 재스퍼 존스 당시 재스퍼 멀티미디어 작품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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